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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19 드림캠프 in 도이칠란트 - 독일 프랑크푸르트
작성자 | 루츠템 조회수 | 24 작성일 | 2019-12-20
내용

- 2019. 11. 1 독일 프랑크푸르트-

화폐박물관에서 제일 처음 보게 되는 화면이다. 바스 이스트 겔트?(Was ist geld, 돈이란 무엇인가)

럽에서 가장 큰 공항은 런던 히드로 공항이고 두 번째로 큰 공항이 바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이다. 독일 경제의 중심지이자 독일 최대의 공항이 위치한 덕분에 도심에는 하노버 산업박람회 다음으로 큰 규모의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이 있으며, 전 세계 바이어와 셀러들의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뮌헨 다음가는 독일의 부자 도시, 경제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다.

이른 아침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다. 마지막 날인데 화창한 하늘을 기대하기 어려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과향이 나는 허브차와 함께 독일식 소시지와 치즈, 계란 등으로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전과 다르게 늦잠 자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 식성 좋은 우등생들이다 보니 6시 30분에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와서 밥을 먹고 갔다. 그래서 동행한 성인분들만 식사를 잘 하셨나 확인하면 되는 특이한 여행이 되었다.

마지막 호텔식을 먹고,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짐을 실어야 하기에 짐을 제대로 정리했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이미 영국에서 독일로 올 때 경험을 했기 때문에 기념품을 사느라 공간이 부족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화물 기준을 잘 지켰다. 교육과 반복적인 연습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이제 공항에서만 O.K 되면 안전하게 한국으로 가는 것이다.

오전 일정은 원래 예정된 일정표의 순서를 바꿔 프랑크푸르트 구 시청사와 광장, 대성당 등을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예정이던 독일 연방중앙은행 화폐박물관은 우리 멘사 드림캠프 학생들이 온다는 소식에 관장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기로 하여 일정을 오후로 조정하게 된 것이다. 일반 직원이 아니라 관장님이 직접 인솔한다니 이것 또한 드림캠프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우리가 이미 방문한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던 괴테가 태어난 곳이다. 괴테의 외 할아버지가 프랑크푸르트 시장이었고, 할아버지는 재단사이자 와인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래서 괴테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귀족 집안 출신이었다. 그가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한 이유도 바이마르 공화국이 괴테를 재상으로 추대하였기 때문인데 단순히 소설로 유명해진 것 외에 그의 인맥 또한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괴테가 태어난 집이 박물관과 함께 보전되고 있어서 우리는 괴테의 생가로 먼저 가 보았다. 보통 문학과 관련한 연수팀이 오지 않으면 이렇게 괴테의 출생과 죽음에 관련된 두 도시를 모두 보는 경우가 없는데 우리 드림캠프는 역사문화탐방을 주제로 하는 교육 캠프라 가능한 일정이라며 가이드 선생님도 다소 놀라워했다.

괴테의 생가(왼쪽)와 괴테하우스 박물관

빨간 장미가 자라는 괴테의 생가. 왼쪽 뒤편 건물 공사 때문에 사다리차와 밴이 앞 도로를 막아 관람하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시내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괴테의 생가 앞도 그랬다. 사다리차와 밴 등이 골목을 막고 공사를 하는 통에 건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지만 관리를 잘 받고 있는지 창가에 빨간 꽃을 심어둔 집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옆에 조그마한 크기의 괴테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괴테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는 대학교의 별칭에도 남아있는데, 각 도시마다 1개의 대학만이 있는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대학교는 괴테 대학교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골목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집 구경을 한 다음 대성당 방향으로 향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손이 머리 위로 묶인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조각상을 발견했다. 이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유태인들을 기리는 기념 조각상이었다. 독일인들은 과거를 알고 미래에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한 반성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잔인했던 과거를 이렇게 도심 중앙에 기념 조각으로 남기고 있었다. 캠프 기간 중 보았던 파괴된 교회, 성곽 등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원형을 복구하지 않은 수많은 유물들이 바로 전쟁의 아픔과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파괴된 상태로 보존하는 것들이었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나라에 한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되레 피해자가 잘못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유럽인들로부터 좋은 것은 전혀 배우지 못하고 제국주의라는 나쁜 욕망만 배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 조각상

금요일 오전 대성당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독일은 드레스덴에서 일어났던 마틴 루터 목사의 종교개혁으로 건물은 성당이지만 종교는 기독교로 개종이 되었다. 그래서 성모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곳이었고, 일반적으로 딱딱하고 멋이 없는 교회 건물들과 달리 성당을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아마 가장 크고 화려한 교회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독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회의 내부의 분위기는 여느 교회와 비슷했다. 초를 켜고 기도드리는 공간과 예배당이 중심이었다. 보통 성당에 가면 그 성당을 소개하거나 자랑하는 책자와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조각상 등을 판매하는데 독일에서는 대성당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고, 성당 벽에 걸린 그림들과 스테인드글라스, 기사들이 착용했던 갑옷 등을 감상하며 기사의 경례(신분 확인 행위)를 따라 해 봤다.

높이 95m에 이르는 대성당이 우뚝 서 있다.

다른 곳의 성당 보다 화려함이 훨씬 적은 이유는 교회로 변경되며 성당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보여주기식 꾸밈을 버렸기 때문이다.

군대 가기 전에 미리 경례 연습부터

소원을 너무 많이 비는 우리 캠프 학생들. 다 이뤄지길 바란다.

조용한 곳이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데리고 다시 뻥 뚫린 거리로 나온 우리는 구 시청사가 있는 뢰머광장으로 향했다. 시내 중심에 건물들이 몰려있다 보니 5분도 채 안 걸려 광장에 도착했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비도 오고, 평일 오전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가보니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독일에서 결혼식은 우리나라처럼 스. 드. 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기본 세트로 하는 예식 행사를 하지 않고 시청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하루 종일 파티를 열어 춤추고 즐기는 나라도 있는데 독일은 정말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곳인가 보다. 낭만 없는 사람들 같으니... 괴테의 로맨스 소설이 왜 그런 폭발적 인기를 끌었는지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친척과 친구들이 풍선과 꽃 등을 들고 시청사 문 앞에 모여 있었다. 문이 열리고 준비 중이던 예비부부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잠시 후 신고를 마친 진짜 부부가 문을 열고 나오자 사람들이 꽃을 뿌리며 새로 출발하는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다소 밋밋했지만 잠깐의 축하 만으로도 모든 것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결혼식 축하 하객들과 혼인신고를 위해 입장하는 예비부부들

뒤에 보이는 2층 테라스에서 차범근 감독이 현역 시절 독일 시민들 앞에서 손을 흔들며 환호를 받았었다.

금융가를 바라보며, 월드 넘버 원!

프랑크푸르트는 인구의 60%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외국인을 만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글로벌 도시이다. 대부분 외국인 선생님, 학생 등이 일반적이다 보니 되려 독일인 학생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외국인 아이들 때문에 발음이 이상해져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6년 독일 메르켈 총리가 난민 수용정책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스를 봤을 때 어떻게 저런 관대한 정책을 펼 수 있을까 의아했지만 아마도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현재 상황과 여론이 반영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이런 독일의 문화적인 상황과 더불어 독일의 부모와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며 키우고 있을까? 가이드 선생님께 질문을 던져보았다.

"독일은 학교와 선생님은 아이의 특기를 찾아주는 게 자기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을 올려주고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진학, 입시, 취업에는 교사나 학교 모두 별 관심을 두지 않아요."

우리나라 학부모님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다. 학교에서 그럼 뭘 가르친단 말이지? 말 그대로 이 학생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잘 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1+1=2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나의 특기와 관심사를 어떻게 선생님이 찾아내줄까? 그래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대학교를 가기 전 학생들의 평균적인 학습 수준은 우리나라 학생들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구구단을 제대로 못 하는 중고등학생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대학교를 가면 달라진다. 1+1=?를 가지고 A라는 답이 나왔으면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형태의 공부를 해 온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면 스스로 연구과제 만들고 이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다. 설사 답이 틀렸더라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연구성과를 만들어낸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학생들은 정해진 공식을 통해 답을 도출하는 연산력만 올려놨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에 대한 연구나 도전정신이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된 이곳 학생들에 비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독일 대학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 이런 교육과정이 한몫을 한다고 봐야겠다.

집에서도 학부모는 아이들의 공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잘하고 못하고는 자기의 실력이고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와 함께 야구나 축구 경기를 보러 간다거나 연애상담을 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요즘은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가거나 경기장을 찾는 등 부모와 자식 간의 친밀한 관계를 좋은 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춘기와 입시를 거치며 부모와 벽이 생기고 자신의 친구들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관계를 생각한다면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된다.

화폐박물관 (GELD MUSEUM). 우측에 연결된 긴 건물은 독일 연방중앙은행 본부다.

점심 식사를 한 뒤 기대하던 화폐박물관으로 향했다. 여전히 비가 내렸지만 점심으로 든든하게 먹은 독일 전통요리 '학센'이 학생들의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줬고, 넘치는 힘으로 식당 앞에서 열심히 춤을 춘 덕분에 땀을 흘리기까지 했다. 박물관에 도착하여 1유로를 넣는 사물함에 짐을 넣고, 관장님이 오기 전 자유관람을 즐겼다. 독일어는 해석이 잘 안되어 대충 눈으로 훑으며 곳곳에 배치된 화폐 관련 체험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관장님이 도착했고, 인사를 나눴다.

멋진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관장님과의 기념 촬영.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전형적인 유럽인 외모의 관장님이 학생들에게 정겨운 미소를 보내주며 인사하였고, 곧 안내가 시작되었다. 자유관람 때 글자를 몰라서 보지 못했던 화폐의 기원관을 먼저 간 우리는 초기의 돈 형태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큰 원형 테이블만 한 돌멩이에 구멍을 뚫고 나무를 끼워 겨우 들고 다니던 것이 화폐라니, 도대체 뭘 살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결혼이나 집을 살 때만 사용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평생에 한두 번이야 힘 좀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 중국에서 종이화폐가 만들어지고, 문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동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화폐의 발전사를 알아갔다.

화폐의 기원에 대한 역사자료들을 벽에서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관장님. 자유관람 때는 몰랐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돈은 무엇인가? 돈의 조건은 무엇인가? 돈은 거래와 교환이 가능해야 하고, 가치를 보존할 수 있어야 하며, 계산이 가능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들은 각자 발행하던 통화를 유로화로 통일하여 화폐 발행의 비용을 절감하고, 나라 간 이동 시 환전의 불편을 없애 경기를 활성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각 국가의 인플레이션 지수를 독일의 유럽연방은행에서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관리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국의 평균 인플레이션 비율은 0.8%로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라고 한다.

2019년 9월 기준, 유럽 각국의 인플레이션 비율을 표시한 자료.

우리는 지폐가 발명된 이후 함께 발명된 위조지폐에 대한 역사를 들으며 위조지폐를 구분하는 법을 체험해 보았다. 또한 화폐가 애완동물이 찢거나 실수로 손상된 지폐는 가지고 오면 새 걸로 바꿔준다는 설명에 학생들이 갑자기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럼 지폐를 절반만 찢어서 갖다 주고 새 돈을 받고, 다음에 나머지 절반을 나중에 갖다 줘서 또 바꿔가면 어떻게 하나요?"

영리한 질문에 가볍게 웃은 관장님은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손상된 조각이 50%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바꿔줍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절반 이상을 가져와야 바꿔주지 딱 절반이나 그보다 모자란 경우는 새 돈으로 교환을 안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환 제도는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적용을 하고 있다.

너도 나도 골드 바! 관람이 끝난 후 다시 들어와 골드 바를 만지던 학생들의 집착이 기억에 남는다.

이어서 이동한 곳에는 학생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골드 바'가 있었다. 무려 6억 3천만 원 상당의 골드 바는 무게만 12.495kg이었다. 한 손만 들어갈 수 있는 통에 손을 넣고 골드 바를 들어보니 힘껏 힘을 줘야 겨우 들 수 있었다. 관장님은 학생들이 골드 바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만지자

"골드 바를 긁어서 손에 금가루를 묻혀가세요, 절대 씻지 말고요"

라고 농담을 하였다. 실제로 누군가 그렇게 했는지 골드바 윗면은 딱딱한 것으로 긁은 자국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어서 화폐의 시작과 여행을 다룬 2편의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화폐박물관 견학은 끝이 났다.

돈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생활 중에 사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 넋을 잃고 보는 캠프 참가자들.

화폐라고 해서 그다지 볼 것도 없고, 지루할 것 같았던 박물관이 이렇게 재밌는 체험기구들과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에 큰 만족을 느꼈다. 또한 개인적으로 왔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돈의 기원과 재미있는 역사적 사건들까지 함께 듣고 나니 드림캠프의 가치를 더 느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간 우리는 마지막으로 짐을 한 번 더 정리한 뒤 출국 수속을 무사히 마쳤다. 5일이란 긴 시간 동안 우리들의 안전한 여행과 안내에 도움을 준 가이드 선생님과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어느 나라를 가든 도시별로 이동할 때 한 번 정도 가이드가 바뀌게 되는데 이렇게 혈기 넘치는 학생들을 데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으로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어떤 나라, 어떤 곳을 가더라도 이번 캠프를 기억하며 그 나라 문화를 즐겁게 체험하고 무궁무진한 흥미와 관심으로 탐구해나가길 바란다.

무사히 인천공항으로 도착한 드림캠프. 언젠가 또 드림캠프에서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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